[초점] 테슬라 제친 '일라이 릴리'의 신약 탄생 비화
성일만24.01/29 목록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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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 릴리가 비만 치료약 잽바운드의 효능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사진=본사 자료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LLY)에게 지난 25일(현지 시간)은 특별한 날이었다. ‘매그니피센트 7’에 속하는 테슬라를 누르고 시가 총액 7위에 올라섰다. 일라이 릴리에게 이런 영광을 안긴 것은 ‘젭바운드’라는 비만치료제 덕분이다.

릴라이 릴리는 까딱 하면 이 약을 만들지 못할 뻔했다. 아니 어쩌면 30년 전 이미 이 약을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리처드 디마르치라는 과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디마르치는 30년 전 인디애나폴리스에 본사를 둔 이 제약회사에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이라고 불리는 내장 호르몬을 연구하는 과학자로 일했다. 그는 실험 도중 우연히 호르몬의 주입이 인간의 체중 감소를 유발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화이자의 비아그라는 당초 심장 질환 치료제로 개발되던 약이었다. 심장에는 별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던 이 약은 투여 받은 환자의 몸에 발기라는 부작용을 가져 왔다. 이후 화이자의 주가를 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릴라이 릴리는 전 세계 비만 시장을 장악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릴리는 디마르치가 발견한 비만 치료 효과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릴리는 당시 가장 잘 팔리던 약인 항 우울제의 후속 약을 찾고 암 치료제와 당뇨병 약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디마르치는 회사 상사와 동료들에게 비만 치료약에 대해 입이 닳도록 설명했다. 하지만 누구도 디마르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디마르치는 22년 동안 몸담아 온 릴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후 그는 3개의 비만 및 당뇨병 치료 전문 회사를 만들어 그 가운데 두 개를 릴리의 최대 라이벌인 노보 노디스크에, 또 하나는 로슈 홀딩에 팔았다. 매각 금액은 총 5억 3700만 달러(약 7185억 원)였다.

디마르치가 릴리를 떠난 후, 회사는 더 이상 비만 치료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릴리의 제품 개발 수석 부사장 제프리 에믹은 “이후 20년 동안 체중 감량 약물은 우리의 관심 밖에 있었다. 솔직히 그 약이 그렇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디마르치의 특허는 2017년에 만료됐다. 다음 해 노보는 체중 감량 주사를 위한 GLP-1 계통 오젬픽을 출시했다. 오젬픽과 비만약인 위고비는 지금까지 이 덴마크 제약회사에 약 330억 달러의 매출을 안겨 주었다.

릴리도 가만있지 않았다. 릴리는 젭바운드로 맞불을 놓았다. 100조 원 비만 시장을 놓고 ‘위고비’와 ‘젭바운드’가 본격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비만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젭바운드’는 88주 동안 26% 체중 감소로 17.4%에 그친 ‘위고비’를 눌렀다.

제약 회사 첫 시가총액 6000억 달러

투자자들의 관심이 릴리의 ‘젭바운드’로 쏠렸다. 지난해 8월, 릴리는 시가총액 5000억 달러를 돌파한 최초의 제약회사가 됐다.

올 들어 일라이 릴리의 시가 총액은 제약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6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매그니피센트 7의 테슬라를 능가한 것이다. 트루이스트 증권의 분석가인 준 리는 요즘 어느 주식을 사야할지 묻는 투자자들에게 "그냥 릴리를 사세요"라고 권유한다.

릴리는 비만 치료제 사업에 다시 뛰어든 셈이다. 30년 전 우연히 디마르치라는 과학자가 발견한 치료제를 잠시 한 눈 파는 사이 놓치고 말았다. 릴리의 데이비드 릭스 CEO는 2017년 최고 과학자 중 한 명인 다니엘 스코브론스키에게 가장 유망한 당뇨병 연구를 맡겼다.

스코브론스키는 GLP-1과 다른 호르몬의 조합인 티르제파타이드라고 불리는 화합물의 안전성을 조사하는 동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 약을 복용한 일부 참가자들에게 너무 많은 체중 감소 현상이 발생했다. 30년 전 디마르치의 발견과 같은 경로였다.

릭스 CEO는 지난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연구 결과를 본 릭스는 가능한 빨리 이 약을 시장에 내놓기 위한 온갖 조치를 취했다. 그로부터 5년 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젭바운드를 체중 감량 치료제로 승인했다.

메사추세츠 종합 병원에서 GLP-1 호르몬의 기능을 발견하는 것을 도운 과학자 다니엘 드러커는 "의약품 개발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 중 하나는 '좋은 것보다 운이 좋은 것이 낫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르디스크의 경쟁은 한 세기 전 현대 의학의 가장 중요한 돌파구 중 하나로 시작됐다. 1922년 주사형 인슐린이 등장하기 전까지 당뇨병을 진단받으면 앞으로 5년 이내 죽는다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릴리는 새로 개발한 당료약을 미국에서 시판하기 시작했고, 노보는 북미 이외의 지역에서 똑같이 했다. 그 후 100년 동안 이 둘은 서로를 능가하기 위해 경쟁해 왔다. 노보는 더 오래 지속되는 인슐린을 개발했다. 릴리는 최초의 생합성 배치를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대량 생산이 더 쉽고 저렴해졌다.

이제 두 회사는 비만 시장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현재 분위기는 젭바운드의 일라이 릴리가 한 발 앞서 가고 있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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