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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열전] 래리 엘리슨 "오라클 신탁 실리콘밸리 악동"
2026.06.1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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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 사진=오라클


[김대호의 인물 열전] 실리콘밸리의 악동이자 전지전능한 신탁(神託)을 꿈꾼 자, 오라클 창업주 래리 엘리슨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이질적인 거인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창업주들은 흔히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처럼 내성적이고 치밀한 천재형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거나 아니면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처럼 세상을 바꾸겠다는 종교적 신념에 가득 찬 비전가들이다. 이 두 가지 범주에 속하지 않는 기이하고도 독보적인 거인이 존재한다. 세계 최대 기업용 데이터베이스 및 클라우드 기업 오라클(Oracle)의 창업주,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 바로 그 주인공이다. .

그는 수천억 원짜리 초대형 요트를 몰고, 하와이의 섬 하나를 통째로 사들이며, 끊임없는 스캔들과 네 번의 이혼을 거듭한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플레이보이'이자 '악동'이다. 동시에 승부욕에 미친 비즈니스 전사이기도 하다. 경쟁사를 무참히 짓밟고 인수합병(M&A)을 통해 시장을 독점하는 잔혹한 포식자의 면모를 평생 유지해 왔다. 여든이 넘은 이 노장은 엔비디아의 젠슨 황, 오픈AI의 샘 올트먼과 손을 잡고 생성형 인공지능(AI) 인프라 시장의 가공할 만한 지배자로 재부상하며 또다시 세계 5위권의 거부로 올라사고 있다. 출생의 비극을 딛고 일어나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프로젝트를 간판 삼아 세계 정보기술(IT)의 패권을 쥔 인물이다.

엘리슨의 본명은 로런스 조셉 엘리슨(Lawrence Joseph Ellison)이다. 1944년 8월 17일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모는 미혼의 유대인 여성이었다. 생부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공군 조종사였으나 출생 직후 아들을 버렸다. 생모는 생후 9개월 된 래리가 폐렴에 걸리자 더 이상 양육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시카고에 살던 자신의 이모와 이모부에게 입양을 보냈다. 그를 키워준 양부 네이천 엘리슨(Nathan Ellison)은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출신으로, 전형적인 고고하고 엄격한 인물이었다. 엘리슨의 양부는 대공황 시기 재산을 모두 잃고 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며 늘 영세한 삶을 살았다. 반항적이었던 양아들 래리에게 "너는 커서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는 독설을 퍼붓기 일쑤였다. 이러한 유대인 입양아로서의 정체성과 양부와의 갈등은 청년 래리 엘리슨의 마음속에 거대한 반항심과 '세상에 나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무서운 독기를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1962년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에 입학했으나 2학년 말 자신을 헌신적으로 아껴주던 양모가 암으로 사망하자 기말고사를 치르지 않고 중퇴했다. 이후 캘리포니아로 넘어가기 전 시카고 대학교에 입학해 물리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잠시 접했으나, 이 역시 단 한 학기 만에 때려치웠다. 학위는 없었지만 시카고 대학교 시절 익힌 기초적인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은 그가 서부 오렌지 카운티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IT 엔지니어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되었다. 1970년대 중반,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엘리슨은 '암펙스(Ampex)'라는 회사에서 운명적인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그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은 거대한 국가 안보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검색할 수 있는 차세대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을 발주했다. 이 프로젝트의 비밀 암호명이 바로 '오라클(Project Oracle)'이었다.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신이 인간의 질문에 절대적인 정답을 내려주는 '신탁(神託)'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당시 데이터베이스 기술은 데이터를 순차적으로만 찾을 수 있어 극도로 느리고 비효율적이었다. 이때 IBM의 연구원 에드거 F. 커드(Edgar F. Codd)가 데이터들을 격자 모양의 테이블로 정리해 서로 관계를 맺어주는 '관계형 데이터베이스(RDBMS)' 이론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IBM 경영진은 이 기술이 자사의 기존 데이터베이스 매출을 갉아먹을까 우려해 논문을 사장해 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래리 엘리슨은 이 논문을 읽고 전율을 느꼈다. 그는 IBM이 버린 기술이 미래의 거대한 시장을 열어줄 마스터키임을 직감했다. 1977년, 엘리슨은 동료 엔지니어였던 봅 마이너(Bob Miner), 에드 오츠(Ed Oates)와 함께 단돈 2,000달러를 들여 오라클의 전신인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SDL)'를 설립했다. 그들은 CIA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다진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기술을 상업용 소프트웨어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979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RDBMS)인 '오라클 버전 2'를 시장에 출시하며 사명 자체를 오라클로 변경했다.

일반 대중에게 오라클은 애플이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 비해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다. 소비자를 직접 대면하는 제품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라클은 전 세계 대기업, 은행, 정부 기관, 군대의 '디지털 척추'를 담당하는 기업용 소프트웨어의 제왕이다. 오라클의 핵심 사업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DBMS): 전 세계 대형 은행의 계좌 정보, 항공사의 예약 시스템, 대기업의 재고 데이터 등 절대로 오류가 나거나 해킹당해서는 안 되는 핵심 데이터는 대부분 오라클의 프로그램 위에서 구동된다. 이 분야에서 오라클의 신뢰성과 시장 점유율은 독보적인 1위이다.

둘째, 전사적 자원 관리(ERP) 및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기업의 인사, 재무, 물류, 구매 등 경영 전반을 통합 관리하는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SaaS)을 제공한다. 2021년에는 의료 정보 기업 '서너(Cerner)'를 인수하며 글로벌 헬스케어 데이터 시장까지 장악했다.

셋째,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OCI): 아마존(AWS), 마이크로소프트(Azure)보다 늦게 클라우드 시장에 진입했으나, 최근 고성능 컴퓨팅 파워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생성형 AI 가동을 위한 핵심 인프라로 급부상하고 있다.

IMF 시기 소프트웨어 오라클은 한국의 경제 및 산업 발전사, 특히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과정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흔적을 남겼다. 1989년 한국지사인 한국오라클이 설립된 이후, 국내 금융권과 대기업의 전산망은 사실상 오라클이 지배해 왔다. 1997년 외환위기(IMF) 전후의 상황은 상징적이다. 당시 구조조정과 경영 효율화 압박에 직면한 삼성, SK, 현대, LG 등 국내 대기업들은 글로벌 표준에 맞춘 경영을 위해 앞다투어 전산 시스템을 혁신해야 했다. 이때 대기업들이 도입한 전사적 자원 관리(ERP) 시스템과 핵심 데이터베이스의 메인 엔진이 바로 오라클의 제품이었다. 오라클 없이는 한국 대기업의 일일 결산이나 글로벌 공급망 관리가 불가능했을 정도였다.

기술 독점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오라클은 한국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무기로 매년 천문학적인 유지보수요율을 요구해 국내 기업들과 잦은 갈등을 빚었다. "한국 기업들이 번 돈을 오라클이 라이선스 비용으로 다 뜯어간다"는 비판이 비등했던 이유다. 이에 반발한 국내 IT 업계에서는 오라클 독점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픈소스 데이터베이스(MySQL, PostgreSQL)로의 전환을 추진해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원자력발전소, 대형 은행 등 초고신뢰성이 필요한 핵심 기관에서는 오라클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AI 붐을 타고 귀환한 81세의 황제래리 엘리슨은 2014년 오라클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내려놓고 최고기술책임자(CTO) 및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났다. 경영 일선에서 한 발 비껴선 듯 보였던 이 노장은 2025년과 2026년에 걸쳐 불어닥친 생성형 AI 광풍 속에서 다시 한번 실리콘밸리의 전면에 등장했다. 오라클은 일찍이 데이터센터의 구조를 초고속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RDMA 네트워크 클러스터' 기반으로 설계했다. 이는 엔비디아의 GPU 카드를 묶어 대규모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최적의 환경이었다. 이를 간파한 샘 올트먼의 오픈AI는 2025년 오라클과 5년간 총 3,000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공급 초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오픈AI의 인공지능이 돌아가는 심장부 역할을 마이크로소프트뿐만 아니라 오라클의 인프라가 나누어 맡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오라클의 주가는 폭등했고, 래리 엘리슨의 자산은 한때 3,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구글의 창업주들을 제치고 세계 2위의 부호 자리까지 넘보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최근인 2026년 6월, AI 인프라 추가 구축을 위한 연간 700억 달러 규모의 폭발적인 자본지출(CAPEX) 발표와 부채 증가 우려로 시간 외 주가가 10% 급락하는 부침을 겪고 있으나, 월가는 여전히 오라클을 AI 시대의 가장 강력한 후방 인프라 공급자로 평가하고 있다. 래리 엘리슨의 평생을 관통하는 좌우명은 장자의 우화나 철학적 명언이 아니다. 사막의 칭기즈칸이 남겼다는 잔혹한 격언, "내가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타인이 모두 실패해야만 한다(It’s not sufficient that I succeed. All others must fail)"이다. 그는 실제로 경쟁사였던 시벨 시스템즈, 피플소프트,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집어삼키며 경쟁자들을 시장에서 말살해 왔다.

CIA 프로젝트에서 기회를 포착한 동물적 감각은 오라클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위선적인 도덕주의를 배격하고, 오직 승리와 독점, 그리고 기술적 지배력만을 추구해 온 래리 엘리슨의 거친 삶은 실리콘밸리가 감추고 싶어 하는 자본주의의 가장 가차 없고 날것 그대로의 본질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거대한 AI 서사 속에서 청구서를 흔들며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그의 인물 열전은 아직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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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 사진=오라클


[김대호의 인물 열전] 실리콘밸리의 악동이자 전지전능한 신탁(神託)을 꿈꾼 자, 오라클 창업주 래리 엘리슨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이질적인 거인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창업주들은 흔히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처럼 내성적이고 치밀한 천재형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거나 아니면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처럼 세상을 바꾸겠다는 종교적 신념에 가득 찬 비전가들이다. 이 두 가지 범주에 속하지 않는 기이하고도 독보적인 거인이 존재한다. 세계 최대 기업용 데이터베이스 및 클라우드 기업 오라클(Oracle)의 창업주,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 바로 그 주인공이다. .

그는 수천억 원짜리 초대형 요트를 몰고, 하와이의 섬 하나를 통째로 사들이며, 끊임없는 스캔들과 네 번의 이혼을 거듭한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플레이보이'이자 '악동'이다. 동시에 승부욕에 미친 비즈니스 전사이기도 하다. 경쟁사를 무참히 짓밟고 인수합병(M&A)을 통해 시장을 독점하는 잔혹한 포식자의 면모를 평생 유지해 왔다. 여든이 넘은 이 노장은 엔비디아의 젠슨 황, 오픈AI의 샘 올트먼과 손을 잡고 생성형 인공지능(AI) 인프라 시장의 가공할 만한 지배자로 재부상하며 또다시 세계 5위권의 거부로 올라사고 있다. 출생의 비극을 딛고 일어나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프로젝트를 간판 삼아 세계 정보기술(IT)의 패권을 쥔 인물이다.

엘리슨의 본명은 로런스 조셉 엘리슨(Lawrence Joseph Ellison)이다. 1944년 8월 17일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모는 미혼의 유대인 여성이었다. 생부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공군 조종사였으나 출생 직후 아들을 버렸다. 생모는 생후 9개월 된 래리가 폐렴에 걸리자 더 이상 양육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시카고에 살던 자신의 이모와 이모부에게 입양을 보냈다. 그를 키워준 양부 네이천 엘리슨(Nathan Ellison)은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출신으로, 전형적인 고고하고 엄격한 인물이었다. 엘리슨의 양부는 대공황 시기 재산을 모두 잃고 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며 늘 영세한 삶을 살았다. 반항적이었던 양아들 래리에게 "너는 커서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는 독설을 퍼붓기 일쑤였다. 이러한 유대인 입양아로서의 정체성과 양부와의 갈등은 청년 래리 엘리슨의 마음속에 거대한 반항심과 '세상에 나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무서운 독기를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1962년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에 입학했으나 2학년 말 자신을 헌신적으로 아껴주던 양모가 암으로 사망하자 기말고사를 치르지 않고 중퇴했다. 이후 캘리포니아로 넘어가기 전 시카고 대학교에 입학해 물리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잠시 접했으나, 이 역시 단 한 학기 만에 때려치웠다. 학위는 없었지만 시카고 대학교 시절 익힌 기초적인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은 그가 서부 오렌지 카운티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IT 엔지니어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되었다. 1970년대 중반,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엘리슨은 '암펙스(Ampex)'라는 회사에서 운명적인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그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은 거대한 국가 안보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검색할 수 있는 차세대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을 발주했다. 이 프로젝트의 비밀 암호명이 바로 '오라클(Project Oracle)'이었다.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신이 인간의 질문에 절대적인 정답을 내려주는 '신탁(神託)'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당시 데이터베이스 기술은 데이터를 순차적으로만 찾을 수 있어 극도로 느리고 비효율적이었다. 이때 IBM의 연구원 에드거 F. 커드(Edgar F. Codd)가 데이터들을 격자 모양의 테이블로 정리해 서로 관계를 맺어주는 '관계형 데이터베이스(RDBMS)' 이론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IBM 경영진은 이 기술이 자사의 기존 데이터베이스 매출을 갉아먹을까 우려해 논문을 사장해 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래리 엘리슨은 이 논문을 읽고 전율을 느꼈다. 그는 IBM이 버린 기술이 미래의 거대한 시장을 열어줄 마스터키임을 직감했다. 1977년, 엘리슨은 동료 엔지니어였던 봅 마이너(Bob Miner), 에드 오츠(Ed Oates)와 함께 단돈 2,000달러를 들여 오라클의 전신인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SDL)'를 설립했다. 그들은 CIA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다진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기술을 상업용 소프트웨어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979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RDBMS)인 '오라클 버전 2'를 시장에 출시하며 사명 자체를 오라클로 변경했다.

일반 대중에게 오라클은 애플이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 비해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다. 소비자를 직접 대면하는 제품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라클은 전 세계 대기업, 은행, 정부 기관, 군대의 '디지털 척추'를 담당하는 기업용 소프트웨어의 제왕이다. 오라클의 핵심 사업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DBMS): 전 세계 대형 은행의 계좌 정보, 항공사의 예약 시스템, 대기업의 재고 데이터 등 절대로 오류가 나거나 해킹당해서는 안 되는 핵심 데이터는 대부분 오라클의 프로그램 위에서 구동된다. 이 분야에서 오라클의 신뢰성과 시장 점유율은 독보적인 1위이다.

둘째, 전사적 자원 관리(ERP) 및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기업의 인사, 재무, 물류, 구매 등 경영 전반을 통합 관리하는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SaaS)을 제공한다. 2021년에는 의료 정보 기업 '서너(Cerner)'를 인수하며 글로벌 헬스케어 데이터 시장까지 장악했다.

셋째,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OCI): 아마존(AWS), 마이크로소프트(Azure)보다 늦게 클라우드 시장에 진입했으나, 최근 고성능 컴퓨팅 파워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생성형 AI 가동을 위한 핵심 인프라로 급부상하고 있다.

IMF 시기 소프트웨어 오라클은 한국의 경제 및 산업 발전사, 특히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과정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흔적을 남겼다. 1989년 한국지사인 한국오라클이 설립된 이후, 국내 금융권과 대기업의 전산망은 사실상 오라클이 지배해 왔다. 1997년 외환위기(IMF) 전후의 상황은 상징적이다. 당시 구조조정과 경영 효율화 압박에 직면한 삼성, SK, 현대, LG 등 국내 대기업들은 글로벌 표준에 맞춘 경영을 위해 앞다투어 전산 시스템을 혁신해야 했다. 이때 대기업들이 도입한 전사적 자원 관리(ERP) 시스템과 핵심 데이터베이스의 메인 엔진이 바로 오라클의 제품이었다. 오라클 없이는 한국 대기업의 일일 결산이나 글로벌 공급망 관리가 불가능했을 정도였다.

기술 독점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오라클은 한국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무기로 매년 천문학적인 유지보수요율을 요구해 국내 기업들과 잦은 갈등을 빚었다. "한국 기업들이 번 돈을 오라클이 라이선스 비용으로 다 뜯어간다"는 비판이 비등했던 이유다. 이에 반발한 국내 IT 업계에서는 오라클 독점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픈소스 데이터베이스(MySQL, PostgreSQL)로의 전환을 추진해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원자력발전소, 대형 은행 등 초고신뢰성이 필요한 핵심 기관에서는 오라클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AI 붐을 타고 귀환한 81세의 황제래리 엘리슨은 2014년 오라클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내려놓고 최고기술책임자(CTO) 및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났다. 경영 일선에서 한 발 비껴선 듯 보였던 이 노장은 2025년과 2026년에 걸쳐 불어닥친 생성형 AI 광풍 속에서 다시 한번 실리콘밸리의 전면에 등장했다. 오라클은 일찍이 데이터센터의 구조를 초고속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RDMA 네트워크 클러스터' 기반으로 설계했다. 이는 엔비디아의 GPU 카드를 묶어 대규모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최적의 환경이었다. 이를 간파한 샘 올트먼의 오픈AI는 2025년 오라클과 5년간 총 3,000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공급 초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오픈AI의 인공지능이 돌아가는 심장부 역할을 마이크로소프트뿐만 아니라 오라클의 인프라가 나누어 맡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오라클의 주가는 폭등했고, 래리 엘리슨의 자산은 한때 3,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구글의 창업주들을 제치고 세계 2위의 부호 자리까지 넘보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최근인 2026년 6월, AI 인프라 추가 구축을 위한 연간 700억 달러 규모의 폭발적인 자본지출(CAPEX) 발표와 부채 증가 우려로 시간 외 주가가 10% 급락하는 부침을 겪고 있으나, 월가는 여전히 오라클을 AI 시대의 가장 강력한 후방 인프라 공급자로 평가하고 있다. 래리 엘리슨의 평생을 관통하는 좌우명은 장자의 우화나 철학적 명언이 아니다. 사막의 칭기즈칸이 남겼다는 잔혹한 격언, "내가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타인이 모두 실패해야만 한다(It’s not sufficient that I succeed. All others must fail)"이다. 그는 실제로 경쟁사였던 시벨 시스템즈, 피플소프트,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집어삼키며 경쟁자들을 시장에서 말살해 왔다.

CIA 프로젝트에서 기회를 포착한 동물적 감각은 오라클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위선적인 도덕주의를 배격하고, 오직 승리와 독점, 그리고 기술적 지배력만을 추구해 온 래리 엘리슨의 거친 삶은 실리콘밸리가 감추고 싶어 하는 자본주의의 가장 가차 없고 날것 그대로의 본질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거대한 AI 서사 속에서 청구서를 흔들며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그의 인물 열전은 아직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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