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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풀, ‘이란 전쟁·관세’ 직격탄에 실적 반토막… 가전 수요 ‘금융위기급’ 급락
2026.05.09 08:00 실적속보
월풀, 1분기 8200만 달러 적자 전환… 연간 주당순이익(EPS) 전망치 6달러서 3달러대로 ‘반토막’ 하향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에 미 소비자 심리 붕괴, 가전 판매량 7% 이상 감소하며 ‘레세션 수준’ 불황 진입

가계 부담 가중에 4월 10% 인상 이어 7월 4% 추가 인상 예고… 고물가·고금리에 가전 교체 포기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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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풀 회사 로고. 사진=연합뉴스


지난 7일(현지시각)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 보도에 따르면,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 변화가 글로벌 가전 시장의 상징인 월풀(Whirlpool)을 실적 늪으로 밀어 넣었다.

월풀은 실적 발표를 통해 이란 전쟁으로 인한 소비자 심리 위축과 관세 철회에 따른 가격 경쟁 심화가 맞물리며 '리세션(경기 침체)' 수준의 산업 침체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이란 전쟁이 부른 '소비 심리 붕괴'... 월풀, 어닝 쇼크에 배당 중단

미국 가전업계의 거두 월풀이 이란 전쟁의 여파로 10여 년 만에 최악의 경영 위기에 봉착했다. 월풀이 최근 발표한 1분기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8200만 달러(약 1200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며 지난해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특히 북미 시장의 매출은 10% 가까이 급감했으며, 주력 제품군인 대형 가전 판매량은 7% 넘게 하락했다.

마크 비처(Marc Bitzer) 월풀 최고경영자(CEO)는 컨퍼런스 콜에서 "지난 2월 말부터 시작된 이란 전쟁으로 미국 내 소비자 신뢰 지수가 급락하며 가전 산업이 경기 침체 수준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라며 "현재 겪고 있는 수요 감소 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유사하거나 오히려 그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실적 악화에 따라 월풀은 연간 주당순이익(EPS) 전망치를 기존 6달러에서 3달러~3.50달러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아울러 부채 감축을 위해 배당금 지급을 전격 중단한다고 발표하자, 뉴욕 증시에서 월풀의 주가는 당일 12% 넘게 폭락했다.

트럼프 관세 무력화와 '14% 가격 인상'의 역설

월풀의 발목을 잡은 또 다른 핵심 변수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관세 무효화 판결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시행했던 외국산 가전에 대한 긴급 수입제한 조치(세이프가드)가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월풀의 경쟁사들은 그동안 납부했던 관세를 환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월풀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이번 판결로 경쟁사들이 약 10%에서 15%의 가격 인하 여력을 확보한 반면, 미국 내 생산 비중이 80%에 달하는 월풀의 수혜 폭은 5%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호무역의 수혜를 기대하며 미 본토 공장을 고수했던 전략이 오히려 가격 경쟁력 약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에 대응해 월풀은 지난달 10%의 가격 인상을 단행한 데 이어, 오는 7월에도 4%를 추가로 올릴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수년간 누적된 인플레이션 압박을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려운 처지"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고유가와 고물가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이 14%에 달하는 인상분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고치느니 그냥 쓴다"... 가전 교체 주기 장기화의 늪

시장의 시선은 냉혹하다. 단순히 가격이 올라서 안 사는 것이 아니라, 경기 불확실성 때문에 소비자들이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가전 보호 장치 전문 업체 스토브 실드(Stove Shield)의 마크 스티븐슨 전무이사는 "식료품비와 휘발유 가격 폭등에 지친 서민들이 수천 달러가 드는 가전 교체를 사치로 여기기 시작했다"라며 "새 제품을 사기보다 기존 가전의 파손을 방지하거나 수리해서 쓰는 방향으로 소비 행태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월풀의 배당 중단 조치를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평가하면서도,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공급망 불안과 미 가계 부채 증가가 향후 월풀의 회복 탄력성을 저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하반기 예정된 추가 가격 인상이 수요를 더욱 위축시키는 '스테그플레이션형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제조업 부활의 상징이었던 월풀의 이번 위기는 지정학적 변수와 정책 리스크가 결합했을 때 글로벌 기업이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남게 됐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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